(민선옥·황용희 지음 | 멘토프레스 | 2010년 10월 | 454쪽 | 15,500원)

북유럽 하늘을 날다

작년 이맘때, 유럽에서 돌아온 나는 열심히 란제리를 팔고 있었다. 살림에 보탤 마음으로 속옷가게를 하는데 요즘엔 경기가 안 좋아 의욕이 나지 않는다. 남편은 매출문제로 나를 놀려대기 일쑤다.

"파도상사 민 사장님, 오늘은 기름값이라도 했나요?"

가게로 전화해서 낄낄거린다. 5년 전 시흥동 은행나무골에 있는 쇼핑센터에 입점할 때는 BYC 대리점 주인이 자신 명의로 점포를 냈었다. 그러다 중간에 일이 생겨 간판을 바꾸게 되었는데 작명을 의뢰받은 남편이 '파도상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사이버 닉네임이라면서. 집에서 가게까지 차를 세 번 갈아타기 때문에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승용차를 갖고 다니는데 요즘 좀 팔리느냐는 얘기다. 그이는 웃고 있어도 나는 속이 편치 않다. 가게라고 차려놓았지만 벌이는 시원찮고 지출은 많아지니 걱정이 앞선다.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간 어느 날 그이가 나를 불렀다.

"오늘 적금 하나 들었어요."
"신정동 형님에게 계 넣고 있잖아요."
"그것 말고, 한 달에 30만 원짜린데 1년 넣는 거요."
"요새는 곗돈도 벅차구만 무슨 적금을 들고 그런대."

남편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이는,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여보, 유럽 한 번 더 갈 생각 없소?"
"뭐라고요? 아유, 더워 죽겠는데 농담 그만하시구려."
"북유럽 어떻소, 적금 타고 거기다 조금 보태면 될 것 같은데……."
"정말이세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내가 반색하자 그이가 등을 두드리며 귓불에 대고 속삭인다.

"사랑해요!"

이런 것을 시쳇말로 닭살 돋는다 하나보다. 사실 우리부부는 닭이다. 정유(丁酉)생으로 영계 때 만나 중닭을 거치며 세파에 푹 삶아졌고 폐계 때까지 갈 작정이니 '닭살 커플' 맞다.

이렇게 하여 팔자에 없는 유럽을 또 가게 생겼다. 그러나 걱정이 앞선다. 빠듯한 월급쟁이 생활에 애들은 장가 갈 만큼 자랐다.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는 많이 낡았다. 이것저것 장만할 것도 많고……. 이렇듯 돈 쓸 데가 천지인데 유럽이라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지만 남편 뜻을 받들어 다녀오기로 했다. 절기가 빠르게 지나간다. 여름 가고 낙엽 지더니 이내 흰 눈이 쏟아진다. 해가 바뀌어 버들개지 움트는 새봄이 왔다. 우리집에서 열두 번째 생일을 맞은 애완견 별이가 베란다에 앉아 늘어진 봄볕을 쬐고 있을 때 문득 유럽이 떠올랐다. 나는 선반에서 가방을 꺼내 먼지를 털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