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원 글 | 시드페이퍼 | 238쪽 | 14,500원

세상 어디에도 똑같은 곳은 없다

내가 방콕을 여행했던 건 9월 중순이었는데, 한낮에는 체감 온도가 40도에 가까울 정도로 덥다 못해 뜨거웠다. 길을 걷다 보면 지면 위로 이글거리는 더운 공기가 올라와 갈증이 생겼고 땀으로 흥건한 등줄기 덕분에 배낭까지 젖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무더위 속에서도 분주히 걷고 뛰어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건 그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매력적인 도시의 찰나들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본 적 없었던 황금빛 궁전과 사원들, 오래된 유적지가 주는 향수와 애틋함, 하늘을 향해 뻗어 있던 거대한 빌딩 숲, 그 사이에서 처연하지만 단정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던 낡은 집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위로 공평하게 작열하던 태양까지. 동양적이다 싶으면 어느 순간 서양식 왕국이 눈앞에 나타났고, 서양적이다 싶으면 또다시 동양적인 예술품이 내 눈에 들어왔다.

친구와 닮은 얼굴을 보며 친숙함을 느끼다가도, 갑자기 들려오는 프랑스어와 독일어에 낯선 감정을 느꼈다. 모델처럼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자랑하던 여성의 입에서 굵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는 내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방콕은 지금까지 내가 가본 그 어떤 도시들과도 달랐다.

그건 여행의 연장 선상에 있던 하노이도 마찬가지였다. 베트남은 한국과 많이 닮아 있고 공유하는 문화도 비슷한 나라지만 내게 있어 하노이는 전혀 다른 세상 그 자체였다. 가느다랗게 지어진 알록달록한 유럽식 2층집들 사이로 새카만 머리카락의 아시아인들이 삐죽삐죽 머리를 내밀고 있고, 언뜻 영어처럼 보이지만 살펴보면 처음 보는 낯선 글자가 영수증에 적혀있는 묘한 나라였다. 나는 방콕에서 느꼈던 그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인 조화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어둡게 내려앉은 구름 아래에서 채도를 잃어버린 것 같은 낡은 집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기괴함도 느껴졌다. 어둡고 침침한 날씨와 어딜 가나 자욱한 연기가 그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켜 주었다.

- 본문 중에서

* 책 소개
『늦지 않았어 지금 시작해』의 저자이자 열정의 아이콘인 소유흑향 노경원의 신간이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열망만 가득하고 무엇 하나 이뤄놓은 것도, 이룰 수도 없었던 평범한 10대에서, 방황을 마치고 혼자 힘으로 12개국을 여행하며 세계 곳곳에 청춘의 발자국을 찍는 20대가 되기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