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 지음 | 미디어윌 | 320쪽 | 13,500원

멍 때리기 좋은 곳

수란 섬에서는 제대로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해변에 멍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처음엔 이상하게 보여도 서서히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무 곳에나 시선을 멈춰도 기막힌 풍경이 있다. 멍을 때리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섬 밖에서도 멍 때리는 시간은 많았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인터넷을 하다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가버린다. 하지만 그건 멍 때리기가 아니다. 진정한 멍 때리기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휴대폰도 티브이도 책도 금지, 그렇게 한참을 지내다 보면 점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해변의 왼쪽 끝에 맹그로브 숲이 있다. 물이 차면 이곳에 새끼 상어들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돌양과 세미가 상어를 보러 나섰다. 한참이 지나도 돌아올 기미가 없어서 맹그로브 숲 쪽으로 가보았다.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다. 맙소사, 물 밑을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새끼 상어가 보였다. 스무 마리, 아니 서른 마리가 넘는다. 이 상어들은 사람들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위협하지도 않는다.

맹그로브 숲은 다양한 유기체를 만들고 뿌리도 견고해서 새끼 상어들의 보호막이 된다고 한다.

물이 빠지자 상어들도 사라졌다. 우리는 스노클링 포인트로 향했다. 생각보다 빨리 빠지는 물 때문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상어가 웅덩이와 웅덩이 사이를 점프하며 지나갔다.

- 본문 중에서

* 책 소개

소설가인 저자가 태국의 방콕, 수린 섬, 끄라비, 뜨랑, 끄라단 섬, 핫야이와 말레이시아의 페낭, 쿠알라룸푸르, 믈라카 그리고 싱가포르를 넘나들며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