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열 지음 | 미술문화 | 336쪽 | 18,000원

세상에서 가장 슬픈 광장 소칼로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난 소칼로 광장을 꼽을 것이다. 소칼로가 광장이라는 뜻이지만 광장을 붙여줘야 드넓은 느낌이 살아나는 것 같다.

내가 다닌 산카를로스 미술학교는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소칼로 광장을 가로질러 다녔다.

광장에 처음 갔던 날은 겨울이었는데, 햇살이 어찌나 뜨겁던지 입고 간 스웨터에 땀이 찰 정도로 후덥지근했다. 사람은 또 어찌나 많던지 걸을 때마다 인간의 강에 떠밀려 내려가는 것 같았다.

상인들의 물건 파는 소리를 우렁차기는 그지없었고 옥수수 굽는 냄새, 고기 볶는 냄새도 요란하게 풍겼다. 광장이라면 왠지 동상이 서있고 장엄할 것 같았는데, 소칼로는 시장판이 따로 없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소칼로의 현실과 맞닥뜨린 나에게 미술학교가 왜 이런 시장 한복판에 있는 건지 좀처럼 이해가 안 됐다.

처음에는 영영 적응이 안 될 것 같았지만 매일같이 소칼로 지하철역에서 내려 광장을 가로질러 걷다 보니, 내 몸과 마음이 소칼로의 햇살, 소리, 냄새에 길들여져 갔다.

난 학교 안보다는 바깥 풍경에 더 마음이 끌렸다. 강의실보다는 길거리가 좋았고, 수업보다는 걸어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는 게 더 좋았다. 학교에 일찍 도착해서 소칼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이자 즐거움이었다. 목적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걷는 그 순간만큼은 유학생도 관광객도 아닌 멕시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다가 소칼로의 명소인 옥상 노천카페를 알게 됐다. 소칼로 광장을 삥 둘러싼 콜로니얼 건물엔 전망 좋은 노천카페가 아주 많다. 특히 옥상에 있는 카페 겸 레스토랑의 아침 뷔페는 멕시코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데다가 가격도 프랜차이즈 레스토랑과 비슷하다.

드넓은 광장을 빽빽이 메우고 있는 많은 것을 한눈에 내려다본다는 것은 이런 쾌감일까.
기분이 심드렁하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날엔 나도 모르게 그곳을 찾았다.

아는 사람으로부터의 자유,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 때문인지 하늘과 좀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 때문인지 그곳에 있으면 온갖 시름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콘체로, 살아 춤추는 아즈텍의 유적
나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녔는데, 소칼로 지하철역 출구는 광장 한복판에 나 있어서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면 머리 위로 드넓은 광장이 펼쳐졌다. 한 번도 올라가지 않은 다락방의 마지막 계단을 디뎠을 때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진 것 같은 느낌이었고, 거기엔 멕시코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었다. 태양, 성당, 사람들, 춤, 음악까지.

그리고 구릿빛 피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콘체로(conchero)라는 춤꾼들이 있었다. 콘체로는 아즈텍 종교의식을 수행하는 무용수를 말하는데, 그들이 있는 곳에선 매캐한 코팔 향이 난다. 혹시라도 향불이 꺼질까봐 입으로도 불고 부채로도 부치면서 치성을 드리고 나면 하얀 연기를 콸콸 뿜어내는데, 콘체로들에게 코팔 향은 신성함을 부르는 신적인 존재와도 같아서, 어떤 의식에서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콘체로의 춤은 아즈텍 신의 환생을 바라는 염원이며, 잡귀를 쫓는 의식이다. 무당이 모자 끝에 뽀족한 깃털을 꽂고, 방울을 쥐고 흔드는 것과 비슷하다. 소리와 몸짓이 혼연일체가 되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콘체로 춤꾼들은 발목에 구슬 밴드를 차고 있는데, 몸을 뒤흔들며 춤을 출 때마다 대나무 숲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바람 소리가 들린다.

- 본문 중에서

* 책 소개
한 여성 도예가의 멕시코 생활 에세이면서 멕시코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안내서다. 저자는 멕시코에서 ‘유학했다’기보다는 ‘살았다’라고 말하는데, 살았다는 것은 공부했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눈에 닿는 일상의 모든 곳에 미술이 녹아들어 있는 놀라운 땅이었으며, 지금까지 알고 있던 미술에 대한 개념이 뒤바뀌는 충격적인 곳이었다.